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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해사고등학교 총동창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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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오영 2022-05-19 13:15:30

 

안주하지 말고 항상 도전하는 자세로 임하기를

 

 

인천해사고등학교 총동창회 회장을 역임 중인 윤오영 회장은 광명해운의 이사직을 맡고 있다.

늘 도전하며 현실에 안주하지 않는 윤오영 회장에게 향후 동창회의 나아갈 방향과 그가 살아온 삶에 대해 들어봤다.

 

 

Q. 간단한 회사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A. 광명해운2016년 설립되어 작은 국내 탱커선을 시작으로 현재는 내·외항을 운항하는 오일 & 케미컬 탱커 선사로 거듭났습니다. 지금처럼 노력하여 향후 사업 범위를 국제적으로 계속 늘려나갈 생각입니다.

 

Q. 해기사 출신으로 해운회사의 이사라는 직책을 맡고 계신데요. 지금까지의 과정을 들려주세요.

A. 5형제 중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위로 나이 차가 많이 나는 형들이 있어서인지 놀기 좋아하는 골목대장으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그렇게 중학교를 졸업할 무렵 인천해사고등학교 선배님들의 학교 소개 방문이 있었습니다. 선배님들이 연설하는 모습에 감동하여 반대하는 담임 선생님을 2주 동안 설득해 혼자 안양에서 인천(인천해사고등학교)까지 찾아가 원서를 접수하였습니다. 모교에 돌아가 관심있는 친구들을 설득하여 15명을 데리고 다시 원서접수를 했는데 16명 모두 합격해서 같이 학교생활을 하였습니다. 그 중, 적응하지 못한 몇몇 친구들과는 작별한 기억이 납니다.

해기사시험 합격 후 3학년 여름방학 중 동진상운에 입사하였고 당시 실습의 특성상 실습 항해사로 근무하지 못하고 오일 & 케미컬 선박의 OS(갑판원)로 실습하여 만 17세의 나이에 고생을 정말 많이 했습니다. 오일 & 케미컬 선박에서 일항사 직책까지 쉬지 않고 꾸준하게 승선근무를 하였고, 추후 호주(캠시)에서 정육점을 운영하였으나 순탄하지 못하여 다시 한국에 돌아와 국적외항선(동화특수선 주식회사)에 승선하였습니다. 당시 동진상운/(도쿄마린선단)에서 승선 중 배운 지식이 얼마나 유용하게 사용되었는지 그런 저를 유심히 지켜보던 선주 사장님의 권유로 사무실 근무 경력이 없었음에도 서울 본사 영업팀 책임자로 입사하여 사장님 옆자리에서 개인 강습을 받으며 해운 업무를 배웠습니다. 당시 힘들었지만 새로운 업무를 배워가며 즐겁게 일했던 기억이 생생하네요.

2년 정도 근무 후 회사의 사정으로 폐업을 하고 쉬는 중 머리도 식힐 겸 승선 중에 만났던 부산해사고를 졸업하신 형님과 전국 일주(강원도-목포-광주-여수-부산)를 하였는데 마지막 여행지 부산에서 부산해운선사에 근무하는 형님의 선배가 찾아오셨습니다. 그 만남을 계기로 하나쉽핑관리의 운항팀장으로 입사하여 선박관리업을 배우고 근무 1년 후 당시 관리하던 선박 선주의 눈에 띄게 되어 동림탱커에 입사하여 15년을 근무하였습니다. 근무 중 사내 동료인 아내를 만나 동림탱커사장님의 주례와 동료들의 축하 속에 행복한 결혼식을 올렸고, 2년 전 개인적인 목표를 위하여 지금 광명해운에 입사하여 본업의 책임자로 근무 중입니다.

Q. 인천해사고등학교 총동창회 회장을 맡고 계시는데, 그 포부와 계획이 궁금합니다.

A. 우리 국립인천해고등학교의 역사는 40년이 넘었으나 그나마 모양을 갖춘 총동문회의 역사는 15년 정도 되었습니다. 타 동문회와 비교하면 아직 많은 것이 부족하지만 앞으로 대내외적으로 원만하게 활동하여 해기사협회 및 관련부처에 우리의 입지를 찾고, 권위를 유지해 나갈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또한, 해운과 해기사협회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인천해사고 총동문회가 될 것입니다.

동문회가 추진하는 필수사업에 관심을 갖고 계속 발전시키며 재학생을 기준으로 하는 장학금 지급제도를 확장해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또한, 동문회 사무실을 부산에 마련하여 원만한 동문회 활동과 졸업한 선·후배님들이 편안하게 찾아올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고자 합니다.

 

Q. 지금까지 겪은 특별한 일화가 있었다면 소개해주세요.

A. 이항사, 일항사 시절에 항해사와 실습생들에게 교육 후 수업료 대신 장난삼아 버릇처럼 저의 계좌번호를 암기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렇게 인연을 맺고 세월이 흘러 서로를 잊을 무렵 회사에서 업무차 출장 중 크게 교통사고를 당해 입원하게 되었는데 퇴원 후 통장을 확인해 보니 수업료(위로금)가 입금되어 있었습니다. 어려운 사정을 안 그분들의 따뜻한 배려에 지금도 감사한 마음으로 살고 있습니다.

 

Q. 향후 비전 및 계획이 궁금합니다.

A. 15년 동안 근무하며 인정도 받고 정든 동림탱커에서 막 시작한 광명해운에 입사를 강행했던 이유는 나 자신을 시험하고 싶어서입니다. 과거 입사 당시 동림탱커는 작은 내항 선사였습니다. 동림탱커의 성장은 저의 노력이었다기 보다는 당시 유능한 선배님들이 계셨고, 그들의 가르침과 노고에 빛내어 대표이사님의 사업 마인드가 잘 융합되어 체계적인 외항선사로 거듭났다고 생각됩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제가 40대 초반 부장의 직책에 올라 주위를 돌아보니 철통같던 그분(선배님)들은 모두 퇴사하고 제 위로 저보다 1년 차 먼저 입사하신 이사님 한 분만 남아 계셨습니다. ‘~ 이게 나의 미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고 불안함과 함께 이렇게 있어서는 안되겠다는 판단과 나도 내 손으로 해운선사를 창업하여 이끌어 보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모아둔 돈도 없고 지금까지 해운의 어려웠던 시기도 유능한 선배님이 계셔서 헤쳐나갈 수 있었던 것을 생각하니 나 혼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지금 광명해운에서 내항 케미컬 선박을 인수하여 수송을 시작한다는 소식과 함께 후배의 권유로 지금의 대표이사님께 면접을 보게 되었고 이 회사를 새로운 동료들을 이끌고 나의 해운 경험을 녹여 지금의 동림탱커처럼 성장시켜보자는 목표를 가지고 입사하게 되었습니다. 생각한 목표가 달성되면 저 또한 직접 제 회사를 설립하여 해운사업에 도전하는 것이 최종 목표입니다.

 

Q. 후배 해기사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A. 1) 해기사는 상위 면허취득이 최우선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면허가 높으면 해운을 보는 눈높이와 선택지가 확연하게 달라집니다. 제가 해운선사에 근무하면서 지금도 후회하는 것은 지금의 모습에 안주하며 상위면허 취득에 노력하지 못한 점입니다.

2) 언어의 장벽을 넘으십시오. 해운은 외국어가 필요 없는 국내운항도 있으나 모든 선사의 목표는 외국 간의 해운 비즈니스로 확장해 나가는 것이 간절한 목표일 것입니다. 유능한 후배 및 선배도 언어의 장벽을 넘지 못하여 딱 그 장벽까지 해운에 남아 계셨습니다. 언어 공부에 게을리하지 말고 꾸준히 필요한 언어를 공부하는 습관을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