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기사 명예의 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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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정년도 2012년도
성함 금농(錦農) 유항렬 (劉恒烈)
출신 충남 공주
태생 금농 유항렬은 1900년 11월 22일 충남 공주에서 태어나 공주 공립보통학교와 일본 나고야 중학을 거쳐 1925년 동경고등상선학교를 3위의 성적으로 졸업하고, 일본에서 유럽과 북미 항로를 오가는 일본 상선회사에서 2등 항해사로 일하다 1930년 귀국, 상하이 항로에 취항하던 평안환(3천톤) 등에서 선장으로 7년간 근무하였다.
우리나라 모든 항만에 일본인 도선사만 취업하였던 1937년 일본인들의 견제와 반대를 극복하고 우리나라 최초로 인천항 도선업 면허를 취득하여 1971년 퇴임까지 34년간 3천척가량의 각종 선박을 안전하게 도선하였다.
특히, 해방이후 미군정으로부터 전속 도선사면허를 받고 척박한 환경에서 인천항을 홀로 지켰으며, 1947년 물자 고갈로 난리를 격고 있던 상황에서 구호물자를 실은 미화물선 리퍼블릭호(2만5천톤) 등 군함과 화물선 50여척을 심한 풍량속에서도 투철한 사명감으로 무사히 입항시켜 미 항만사관으로부터 감사장을 받았다. 또한 6·25의 1·4후퇴 당시 자신의 안위보다 직업에 대한 소명의식으로 인천항을 철수하는 미군함정과 모든 선박을 출항시킨 다음에야 마지막으로 피난길을 나섰다.
1963년 4월 고베에서 개최된 아시아지역 Pilot회의 창립총회에 한국대표로 참가하는 등 조선총독부, 미군정, 대한민국으로 이어진 통치체계에 상관치 않고 오로지 도선업이 항만시설이라는 공개념으로 우리나라 항만과 해운사업에 지대한 발자취를 남겼다. 1971년 12월 6일 영면할 때까지 해기사와 도선사로 일생을 바쳐온 장인정신과 직업소명의식의 표상이 되어 후배 해기사와 도선사의 귀감이 되고 있다.
약력 1900 : 충남 공주 출생
1920 : 나고야 중학교 졸업
1925 : 도쿄상선학교 졸업
1925 : 조선유선주식회사 항해사
1928 : 조선유선주식회사 선장
1937∼1961: 인천항 도선사
1971년 12월 6일 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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