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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안전심판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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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병연 심판관 2018-12-21 09:39:57

  
“목표 그 자체만큼 목표로 향하는 과정도 중요… 충분한 고민 과정 거치길"

유병연 부산지방해양안전심판원 심판관

“승선으로 얻은 돈과 시간은 목표를 위해 투자하세요.” 
시종일관 겸손한 언사에도 그 이면에는 굳은 심지가 느껴졌다. 하고 싶은 일을 업으로 삼아 다행이라는 그에게는 최선을 다했기에 풀어낼 수 있는 진솔한 이야기가 있다.


Q. 어떤 일을 하고 계시나요?
A. 부산지방해양안전심판원의 심판관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해양안전심판원은 해양사고에 대한 조사와 심판을 통해 해양사고의 원인을 규명해 해양안전의 확보에 이바지하는 해양 수산부 소속기관입니다. 중앙심판원은 세종에, 지방심판원은 주요 항구가 있는 도시인 부산, 인천, 목포, 동해에 있습니다. 제가 일하고 있는 부산지방해양안전심판원은 부산· 울산광역시 및 경상남도 남동부 해역과 서경 30도에서 동경 60도 사이(유럽 서부, 아프 리카 동·서부 해역)에서 발생한 사건의 1심 단계 심판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원장님을 포 함한 3인의 심판관, 수석 조사관을 포함한 3인의 조사관 그리고 심판 서기 등 여러 명의 직원이 업무에 임하고 있습니다. 부산지방해양안전심판원의 경우 매년 90건에서 100건 정도의 일을 처리하고 있습니다.

Q. 해양안전심판관은 어떤 일을 하나요?
A. 심판관은 조사관과 변론인의 진술을 종합해 심판 사안에 대한 최종적 판단을 합니다. 차 이는 있겠지만 일반 재판의 개념에 빗대어 보면 심판관은 판사, 조사관은 검사, 심판 변 론인은 변호사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Q. 어떤 과정으로 이 자리까지 오시게 됐나요.
A. 한국해양대학교에서 항해학을 전공한 후 3년간 2등 항해사로 승선했습니다. 승선 때부 터 사법고시를 염두에 두고 조금씩 준비를 하다가, 하선 후 본격적으로 시험을 준비했 습니다. 6년이라는 긴 시간 끝에 시험에 합격했고 2년간 사법연수원에서 교육을 받았 지요. 이후, 한진해운의 사내 변호사 등 주로 해상 사건을 전담하는 변호사 생활을 거 쳐 2013년부터 심판관으로 임용되어 현재까지 일하고 있습니다.

Q. 해양안전심판은 어떻게 진행되나요? 
A. 심판은 사고접수를 받은 조사관의 심판청구에 따라 개시됩니다. 이후 심판부(지방 3인 의 심판관, 중앙 5인의 심판관)의 구성, 소환장 발송, 심판 개정, 조사관의 의견 진술과 최후 변론, 재결 고지의 순으로 진행됩니다.

Q. 해양안전심판 과정은 더욱이 신중해야 한다고 들었습니다. 
A. 판정 결과의 내용이 항소, 상고를 거쳐도 지속되기 때문입니다. 해양안전심판 제도가 4 심제이기는 하지만, 해양안전심판원에서 사고의 기술적인 요인을 분석할 수 있다는 점에서 보통 사고의 과실 유무는 1, 2심인 심판원에서 판정한 사항이 그대로 유지됩니다. 3, 4심인 고등, 대법원에서는 판정 사항에 대해 형량 조정만 하는 것이 대부분이지요. 그렇기에 더욱 막중한 책임감을 갖고 심판에 임하고 있습니다.

Q. 승선 당시, 월급으로 받은 돈을 거의 쓰지 않으셨다고 들었습니다. 
A. 사법고시를 준비하기 위해서는 긴 시간만큼이나 많은 돈이 들 것이라는 판단을 했습니 다. 그래서 휴가를 나와서도 공부에 몰두했고, 월급의 대부분은 쓰지 않고 저축하였습 니다. 하고자 하는 목표가 뚜렷했기에 가능한 일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Q. 승선한 경험이 아주 큰 힘이라고 하셨습니다. 
A. 맞습니다. 사실 배를 타던 당시에는 승선 경력이 이렇게 큰 힘이 될 줄은 몰랐습니다. 사법연수원 시절에는 항해사 출신이라는 특이한 이력으로 주목받기도 했고, 무엇보다 업무에 전문성과 경쟁력을 더해주었지요.
 
Q. 이 일의 매력을 꼽는다면요. 
A. 모든 일이 그러하듯,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할 일을 하고 있음에 사명과 보람을 느낍니 다. 상선보다는 어선에서 일어나는 사례가 많은데, 그중에는 어려운 여건에 놓이신 분들 도 꽤 있습니다. 그 과정을 조정함으로써 도움을 줄 수 있음에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Q. 이 분야에서 일하기 위한 마음가짐이 있다면요? 
A. 균형적인 사고를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상황을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바라보려는 것이지요. 또한, 내가 아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겸손함으로 꼼꼼하게 살피고 확인하는 자세도 필요하겠습니다.

Q. 사법고시를 준비하셨던 때가 궁금합니다.
A. 6년이라는 시간을 신림동 고시촌에서 살았습니다. 나보다 머리가 더 좋은 사람들과 어 깨를 나란히 하기 위해 정말 열심히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내가 남들 보다 조금 부족하 게 느껴진다고 해서 낙담하지 않으려 했고, 오히려 ‘나도 저들처럼 해낼 수 있을 것’이 라는 긍정적 마음가짐으로 매일을 이겨나갔습니다. 

Q. 힘든 시기는 없었나요? 
A. 당연히 있었지요. 시험에 몇 차례 낙방하는 것은 물론이고 외적으로도 소홀하다 보니 자 신감이 많이 떨어졌습니다. 책상에 오래 앉아있어 허리에 무리가 오기도 했습니다. 평일 에는 오전 9시부터 자정까지, 주말은 오전 9시부터 오후 10시까지 공부했는데, 효율을 위해 주말에는 공부를 마치고 비디오방에 가서 비디오를 한 편씩 보고는 했습니다. 2002 년 월드컵 당시에는, 대형 서점 앞에 설치된 TV를 보며 설기현의 동점골에 환호한 기억 도 있습니다. 힘든 시간 속에서도 사소한 행복들은 여전히 생생하게 남아있습니다.

Q. 버틸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이었나요?
A. 그 과정 자체를 즐겼기 때문이 아닐까요. 사실 제게는 공부가 아주 괴로운 일은 아니었 습니다. 소위 말하는 ‘청춘’을 공부로만 채운 것이 가끔 아쉽지만, 다시 돌아간다고 해 도 그 길을 걷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만큼 제게는 무엇을 배우고 탐구하는 것이 적성 에 맞았던 것이지요. 그래서 저는, 어떤 직업을 택할 때는 그 직업 자체는 물론이고 준 비 과정이 본인에게 맞는지도 잘 파악해보기를 권하고 싶습니다. 

Q. 이 분야에 관심 있는 분들에게 해주고픈 말이 있다면요.
A. 먼저, ‘돈과 시간을 아껴라’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목표하는 바가 있다면 돈과 시간을 목 표 달성을 위해 투자하십시오. 승선은 이 두 가지를 함께 얻을 수 있는 귀한 시간입니다. 또 하나는,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자신을 믿고 도전하십시오. 하지만 무엇을 얻기 위해 서는 분명 포기해야하는 부분이 있음을 알고, 내가 무엇을 얻고 싶고 무엇을 포기할 수 있는지를 잘 선택하시기 바랍니다. 놓치는 것들을 감수하고서라도 그만큼 그 길이 내 적 성에 맞는지, 그 과정이 내 행복을 해치지 않는지를 충분히 생각해보십시오. 마지막으로, 승선과 동시에 바로 ‘심판관이 되어야 겠다’는 꿈을 꾸는 것도 좋지만, 그 이전에 더 깊고 넓은 탐구를 통해 나 자신이 원하는 바를 확실히 찾기를 바랍니다.